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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보 박사 칼럼, "친일매국노의 회생기"

이순락기자 0 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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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중보 박사, 국립금오공과대학교 연구원 ~


친일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친일한 생계형 친일파이고, 다른 하나는 일신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친일한 친일매국노이다. 친일매국노는 해방 후 보냈어야 되는데 또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본다.

 

1차 회생기: 1945년 해방되면서 맥아더 일반명령 1호에 의해서 38도 이북은 소련군이 김일성을 앞세워 간접군정을 실시하였고, 이남은 미군이 직접 군정을 실시하였다. 오키나와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하지 중장은 한반도를 일본의 지방 정부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김구의 임시정부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해방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일제 강점기 친일 경찰과 관헌들의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친일매국노들은 미군정 덕분에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고 죽음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2차 회생기: 1946년 터키와 그리스 등 발칸반도에서 게릴라가 준동하였다. CIA의 조사 결과 KGB가 암약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최전선으로 한반도의 38도선을 지목하였고, 미군정은 국방경비대를 창설하였다. 여기에 만주 간도 특설대 출신들이 대거 입대하였다. 만주간도특설대란 1940년대 조선인 항일 독립군을 잡기 위해 창설된 친일매국노 부대였다. 이들은 해방 후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미군정에 의해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보수단체 집회에 성조기가 나부끼는 근원이기도 하다.

 

3차 회생기: 1948년 제헌의회는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하였다. 반민특위는 친일매국노들을 잡아들였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은 국회의원에 의한 간선제였고 제1야당은 한민당 이었다. 한민당은 친일 자본가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라는 위기감를 느꼈다. 한민당은 이승만에게 반민특위 위원들이 빨갱이라고 모함하였다. 이승만은 반민특위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였다. 이것을 국회프락치사건이라고 한다. 친일파 처단의 합법적 기회가 이승만의 집권욕 앞에 무산되고 말았다.

 

4차 회생기: 19506.25전쟁이 터졌다. 친일매국노들은 미군과 함께 공산주의를 물리치는데 성공을 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둔갑하였다.

 

5차 회생기: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독재정권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경제개발정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친일매국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영웅으로서 그리고 경제부흥의 선구자로서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친일매국노들과 후손들이 과거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반공하고 성장을 논했다면 천만다행이련만, 오히려 과오를 은폐 축소하고 민족 진보 진영을 빨갱이 간첩으로 매도하였다. 최근에 용산석두가 이들과 놀아나니 역사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2023.9.29. 추석날에

박중보 쓰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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