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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

계요등(鷄尿藤)과 나

김영숙기자 0 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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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존태 시인, 수필가 ~


요즈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날마다 겅험한다. 새벽과 밤 사이를 오가며 오직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던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깨가 허리가 내 발걸음을 느리게 하고 멀리 높게만 바라보던 내 시선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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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요등꽃 모습 1 ~​


내 발 아래 세상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있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풀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낯설기도 하고 신비롭기만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세상,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낮은 세상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

 

전주 완산칠봉 산 밑 길가를 걷다 아주 낯선 꽃을 만났다. 그곳에 수년 전에도 피어 있었고 지금도 피어 있는 꽃이겠지만 나에게는 처음 보는 꽃이다.

꽃 모양이 아주 특이하여 검색해보니 이름이 계요등이라고 한다.

 

鷄尿藤

이 잡초 속에서 그 생명력을 번식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았다.

 

인간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위하여 자연과 재난과 싸우고 또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신과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니, 나 스스로 오늘이 있기까지 또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어떤 갑질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죄송하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 나도 다른 사람을 넘기 위하여 그 사람의 머리를 넘어서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개요등은 다른 매체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하여 보았다.

이 개요등을 통하여

그 생명력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여러 본능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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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요등꽃 2 ~


첫째 이 개요등은 는 닭, 尿는 오줌, 은 등나무로 닭 오줌 냄새가 나는

등나무라는 뜻이다.

잎이나 줄기를 비비면 지릿한 구린내가 난다고 한다.

잎이나 줄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냄새를 풍기되 수분을 위해서는

꽃에서는 냄새를 풍기지 않아서 벌이나 나비를 끌어들인 데는 문제가 없는 듯하다.

즉 줄기와 잎의 냄새로 자기를 지키되 꽃은 냄새를 내지 않으므로 인하여

벌레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그 본능적인 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둘째 이 개요등은 통꽃의 흰색으로 꽃이 아주 작고 꽃잎 속에 꽃술이 숨어있다.

벌레들의 출입이 쉽지 않은 듯하다.

아마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받이하지 않는가 싶었다.

그러나 꽃 안쪽이 자주색을 눈에 확 띄어 벌레들을 끌어들이어 수분한다고 한다.

숨길 것은 숨기되 드러낼 것은 드러내서 자기를 보호하는 능력을 살펴볼 수 있다.

 

셋째, 이 개요등은 사람들에게 잡초로 취급받아 농작물을 지키기 위하여 뽑아내고 잘라낸다. 그러나 그 줄기를 자르면 그곳에서 뿌리를 내어 다시 자라며 더욱이 줄기까지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혼자 서지 못하여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넝쿨식물로

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처럼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계요등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계요등은 집 주변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 닭똥 냄새가 나는 잎과 줄기, 뿌리, 열매가 사람을 살리는 귀한 약이 된다.

계요등은 갖가지 독을 풀고 염증을 삭이며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소화를 잘되게 하며 부은 것을 내리고 습기를 없애는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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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요등꽃 ~


모든 생물이 그럴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며 생명력을 확산할 것이다.

모든 생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요등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환경을 이겨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방법은 좀 다르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카인처럼 자신을 위하여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자신을 위해서 자연을 정복하고, 아니 죽이고 심지어는 이웃과 다른 나라를 죽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요새 북미 간의 대립을 보면서, 그들이 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생존보다는 자존을 위하여 대립하고 정복하고 모든 이웃을 자기의 우주 속으로 끌어들여야만 하는가?

이웃에 대하여 너그럽고 이웃을 위하여 자기의 살을 덜어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까?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웃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면 안 될까?


글쓴이 : 이존태


*사진 : 이존태 작가 제공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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