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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

밥 한 끼 합시다

조은자기자 0 1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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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재 홍

 

뭐라도 다 해낼 것 같다. 언니가 혼자 해도 된다며 밀어내어도 꼼짝 않고 붙어 서서 설거지를 거든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온몸이 아프다며 끙끙댔던 내가 이렇게 신나게 일을 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 기일이라 칠 남매가 다 모였다. 제사를 모시고는 커다란 상 앞에 빙 둘러앉았다. 음식 쟁반이 몇 순배 들락거리자 누군가 살찌는 소리가 절로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먹고 이야기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멀리서 온 동생들이 출근해야 한다며 일어서고 나서야 상을 거두었다. 어머니를 기린다기보다 먹고 떠드는 일에 더 열을 올린 것 같아 조금은 민망했다.

 

우리 형제는 이렇게 모였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기에다 남들보다는 자주 모이는 편이다. 오늘처럼 다 모이면 더없이 좋지만, 서너 명이라도 상관없다.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며 쏟아내는 이야기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이야기 중간중간 집이 떠나가라 웃기도 하지만, 펑펑 울면서 하소연할 때가 더 많다. 괜찮다, 힘내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아무리 팍팍한 세상살이라도 너끈히 넘길 수 있겠다는 힘이 생긴다.

 

오늘 내가 그랬다. 이런저런 일들로 몸살이 왔고 마음마저 편치 않은 상태였다. 어머니 기일이 아니었다면 십중팔구 머리 싸매고 드러누웠을 거다. 제사에 참석할 때만 해도 억지로 서 있었는데 음복 상 앞에서부터 달라졌던가. 수다를 떨어가며 양푼이 속 비빔밥을 실컷 먹고 나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 속이 후련했다.

 

함께 먹는 밥은 언제나 달고 맛있다. 혼자 먹으면 먹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지만, 함께하면 덤으로 얻어지는 게 많기 때문이리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모르는 삶과 마주할 때면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가를 돌아보기도 하고, 역지사지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마음 맞는 이를 만나면 언제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밥 한 끼 하고 싶다는 말은 마음의 문을 열고 무슨 일이든 나누고 싶다는 뜻이기도 할 터. 함께하는 밥 한 끼가 어쩌면 나를 세워주는 힘이 될 수도 있으리니. 나와 밥 한 끼 할 사람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작가소개: 2009에세이스트등단. 수필집그들에게 길을 묻다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달구벌수필문학회. 수미문학회 회원.


 


기사등록 : 조은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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