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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어느 역사학자의 효심"

이순락기자 0 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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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언암 류돈하 ~  


진황한무로 유명한 한주(漢主) 유철(한나라 7대왕)은 신선술에 도취되었다.

흉노 등 외세의 위협이 없어 평화로운 시절에 유철은 황제와 진나라 영정의 고사에 따라 하늘에 제사 지내는 봉선을 행하려 하였다.


이는 기원전 110년의 일로 곽거병의 어린 아들 곽자후를 대동하고 태사령 사마담은 데려가지 않았다.

사마담은 이 일로 울분을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마담은 죽기 전, 자신의 아들 사마천에게 자신의 못다이룬 사적의 정리를 진황한무로 유명한 한주(漢主) 유철(한나라 7대왕)은 신선술에 도취되었다.


흉노 등 외세의 위협이 없어 평화로운 시절에 유철은 황제와 진나라 영정의 고사에 따라 하늘에 제사 지내는 봉선을 행하려 하였다.

이는 기원전 110년의 일로 곽거병의 어린 아들 곽자후를 대동하고 태사령 사마담은 데려가지 않았다.사마담은 이 일로 울분을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마담은 죽기 전, 자신의 아들 사마천에게 자신이 못다이룬 사적의 정리를 완성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사마천(司馬遷)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아버지의 꿈을 태사공서(사기)를 집필하여 완성하였다.

그는 흉노에 항복한 장수 이광리를 변호하는 바람에 궁형이라는 죽음보다 더한 모욕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사마천의 효심은 태사공서를 낳았다.태사공서는 이후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전 계명대 사학과 교수 김기협 선생은 1950년생이다.

자신의 부친 김성칠(1913~1951) 선생은 1951년 전쟁중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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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학자가 된 김기협 선생은 미처 간행하지 못한 부친의 용비어천가를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여 완성했다.

이러한 사연은 도서출판 들녘에서 나온 '역사로 읽는 용비어천가'에 상술되어 있다.


김기협 선생의 모친은 국문학자 이남덕 선생(이화여대 국문과 교수.2012년 별세)이다.

이남덕 선생이 노환과 치매로 고생하자 아들 김기협 선생이 시병하였다.

그 시병과정을 담은 책이 '아흔 개의 봄'이다.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 못다이룬 꿈을 이루고 어머니를 시병하며 그 마지막을 지켜준 어느 사학자의 효심이 5월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마음으로 다가온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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