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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자 류돈하칼럼]고향 안동

이순락기자 0 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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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 청년 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내 고향은 안동이다.
그 중에서도 풍천면 하회리가 내 고향이다.
20대째 700여년에 걸쳐 터잡고 살아온 토박이다.


내 비록 풍산류씨 가문의 서족이지만 서족 역시 엄연한 구성원이다.
안동은 예로부터 영남중에서도 충성과 의리가 깊은 고을이라 많은 충신들과 애국지사들이 배출된 유서깊은 곳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별칭답게 전통문화가 꽃피고 잘 보존되어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고을이기도 하다.
안동을 자랑 할 거리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은 임진왜란의 국난과 안동 구한말부터 시작한 항일광복운동에서 가장 큰활약을 한 것이다.


아울러 안동은 항일광복운동의 성지이다.
일신의 부귀와 영화를 저버리고 고향을 떠나 구국의 행로에 뛰어들어 나라를 위해 순국한 수많은 광복지사들의 혼을 생각해 보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안동의 광복지사들은 대부분 얽히고 설켜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이 성립된 이래,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약포 정탁, 간재 이덕홍 등의 선현으로 이어지면서 학통이 형성되었다.


같은 스승을 모신 그 제자들은 학연에 따라 대대로 통혼하며 유대관계를 이루었다.
이들은 퇴계학파의 본향 안동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했기에 또한 지연으로 맺어져 있다.
혈연, 지연, 학연 이 삼연(三緣)은 매우 오묘하다.
흔히 부정부패를 일삼는 비리 정치인들은 삼연을 이용하여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할 정도로 
뿌리깊게 해먹는다.


그런데 안동 광복운동의 특징은 이 삼연으로 서로 얽혀져 있으면서 각 문중단위로 참여하였다.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일송 김동삼, 백하 김대락, 김우락, 김락, 류천 이만규, 향산 이만도, 이중엄, 이동흠, 동산 류인식, 단주 류림, 육사 이원록, 류도발, 류신영, 류소우, 류시보,김용환, 김지섭, 권오설, 이준태, 이준형, 이병화, 이상동 등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 분들이 바로 삼연으로 얽혀져 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은 누구인가.
고성이씨 참판공파 종손으로 퇴계의 11대 직전제자 서산 김흥락 선생의 문인이다.


서산 김흥락은 또 누구이던가?
문충공 학봉 김성일의 11대손이다.
문충공 학봉 김선생은 퇴계의 수제자 중 한분이자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초유사와 경상우도 관찰사로 곽재우 등 의병의 활동을 지원하며 전라도로 가는 관문 진주성을 지킨 선비 중의 선비이다.
그와 동문수학한 서애 류성룡과 더불어 누구보다 국난극복에 앞장선 대유(大儒)이다.


서산 김선생은 이러한 명문가의 종손으로 관직이 승정원 우부승지까지 달했으며, 무엇보다 
안동을 상징하는 큰어른으로 구한말 격동기 안동에서 각종 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크게 기여한 선비이다.
무엇보다 서산은 퇴계의 학맥을 이어받아 조선의 마지막 산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5년 을미년 안동에서 일어난 을미의병의 봉기를 주도하였으며 독려하였고 의병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서산의 사촌동생 김회락 선생도 의병활동에 참여했다가 순국하였다.
정재 류치명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석주 이상룡, 백하 김대락, 기암 이중업, 일송 김동삼, 대개 이승희, 송기식, 류연박, 등의 문인들을 배출하였는데 이들 모두 구한말 의병과 삼일만세혁명등 항일광복운동에 참여했다.
서산의 제자들은 우리의 전통 유도를 지키면서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는 동도서기론의 자세를 고수하였다.


뒤틀린 격동의 시기에 분연히 일어나 항일광복운동에 헌신하여 제국주의 일본까지 뒤흔든 이들의 의로움은 분명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것이다.
이분들의 생애를 살펴 논하건대 어찌 나라 빼앗은 왜적을 추종하는 무리들과 비길수 있겠는가.
또 어찌 왜적을 추종하는 댓가로 호의호식하여 이 나라의 지배층이 된 자들과 그 자손들에게 지지표를 줄수 있겠는가.


왜적에 빌붙어 부귀와 공명을 누리면서 왜적의 강제식민점령시절을 민족의 근대화로 왜곡한
친일매국매족 부역세력의 반란과 독재를 어쩔수 없는 시대의 사명으로 미화하는 것이 어떻게 민족보수의 길이겠는가.
보수를 참칭하며 대구 경북 즉 영남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친일부역 잔당세력에게 여전히 속아 한 표를 던져 주는 것이 과연 일신의 안락함을 저버리고 목숨걸어 해골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안동광복지사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것이던가.


나는 이러한 연고로 민족보수론자로 자처하면서도 그 새빨간 참칭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념을 떠나 내가 진짜배기 안동사람이라 쪽팔려서 그 새빨간 박정희,박근혜 추종정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족이라는 가치관이 없는 보수는 절대 보수가 아니다.
나는 늘 말하거니와 내가 안동사람인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풍산류씨 가문의 일개 서족인 나 역시 이러한데 학봉 김성일 선생의 15대손이자 서산 김흥락 선생의 현손이며, 파락호 종손으로 유명한 김용환 선생의 친손자인 의성김씨 학봉공파 15대 종손 김종길 선생으로 말하자면 그 자부심이 더 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학봉의 자손 중에서도 그냥 자손이 아니라 가문을 대표하는 종손이 아닌가.
학봉과 서산으로 말하자면 그 해당 시대에 있어서 '우리(민족)의 희망이자 등불'이요, '국난극복을 해 줄 구세주'가 아니었던가.


문충공 학봉 김성일 선생의 아버지 청계 김진 선생은 일찍이 아들 5형제인 약봉 김극일, 귀봉 김수일, 운암 김명일, 학봉 김성일, 남악 김복일, 김연일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내렸다.


"사람이 차라리 곧은 도(道)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무도하게 사는 것은 옳지 않으니, 너희들이 군자가 되어 죽는다면 나는 그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고, 만약 소인으로 산다면 그것을 죽은 것으로 볼 것이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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